‘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다. 그 임금은 바로 신라 제48대 경문왕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위에 올라선 다음 경문왕은 귀가 갑자기 커졌다고 한다. 물론 그의 귀가 당나귀처럼 크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단 두건 만드는 기술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왕은 그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에 붙였고 그 기술자도 그랬다. 하지만 세상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참을 길 없던 두건 만드는 노인은 도림사의 대나무 숲 가운데 들어가 대나무를 바라보고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에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네’라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왕이 이를 싫어하여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 그랬더니 바람이 불면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네’라고 들렸다고 한다. 그리고 21세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그의 귀에 대해 알고 있다. 


출처: 경향DB


지난 몇일 간 대표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었던 것은 ‘대나무 숲’이라는 단어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대나무 숲처럼 말하고 싶은 것 들이 많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비밀을 말하는 공간이다. ‘출판사 옆 대나무 숲’이라면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만이 느낄 수 있는 애환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운영은 간단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 ‘@bamboo_1234’라는 트위터 아이디를 만들고 시작하면 된다. ‘1234’는 비밀번호다. 누구나 로그인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한 개의 대나무 숲 아이디로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공동 트위터’가 되는 식이다. 


‘대나무 숲’ 조성은 하루 이틀 사이에 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각 분야로 퍼져나갔다. ‘신문사 옆 대나무 숲’ ‘방송사 옆 대나무 숲’ ‘광고회사 옆 대나무 숲’ ‘IT회사 옆 대나무 숲’ … 그 중 최고의 확장속도를 자랑 하는 숲은 ‘시댁 옆 대나무숲’(@bamboo_in_law)이다. 한국드라마에서 다양한 시어머니 역할을 해온 강부자의 얼굴(‘에미야 국이 짜다’하는 그 표정!)을 프로필 사진으로 하고 있고 비밀번호는 명절코드 ‘01010815’라고 한다. 


나에게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온 대나무 숲은 ‘촬영장 옆 대나무 숲’이었다. 그곳은 “노동착취와 박봉에 시달리고 있는 영상산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우리 힘내자고, 잘 해보자고 말하지 마세요. 그럴 거면 돈으로 줘요” “스태프들 도시락 먹을 때 감독이랑 주연배우는 꽃등심 먹으러 갔다오고!”는 귀여운 수준이다. “촬영장 스태프들은 아티스트지만 그들의 계약서는 용역과 같다. 윗 분들은 혼자 창작하시고 아랫님들은 용역을 제공한다” “독립장편 3편에 연출/ 제작부로 참여하고 받은 총 임금은 100만원. … 스태프들 인건비로 영화 찍고 감독 배우끼리 영화제다 뭐다 GV(관객과의 대화)하면서 돌아다니면 좋나요? 내가 참여한 작품인데 내가 네이버 카페에서 시사회 신청해서 가야되는 현실” 같은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이 많은 대나무 숲이 어떤 유기체로 성장, 발전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대나무 숲에서의 외치고 듣는 행위는 누군가에게는 ‘140자 속풀이’가 될 수도, 혹은 이 험한 판에서 고생하는 이가 나 혼자는 아니라는 위로를 안겨 줄 것이다. 어쩌면 이니셜 놀이나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리는 진흙탕 같은 익명 게시판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저 이런 현상을 바라보며 “지금의 대나무 숲들이 이 분함을 기억하고 또 다른 대나무 숲을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는다고 만 해도 세상이 참 맑고 밝아 질텐데”(@juneingugi) 라고 써놓은 분의 의견이 내 마음과 같다. 벌써 몇 몇 대나무 숲이 누군가에 의해 ‘계폭’(계정 폭파)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아마도 자신의 귀를 숨기고 싶은 ‘경문왕들’의 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나무 숲을 베고 산수유를 심어도 전해질 이야기는 어떻게든 전해 질 것이다. 헬게이트는, 이미 열렸다.

Posted by 백은하